헨델에 대한 평가

Posted by 친절한 다람쥐
2017. 7. 18. 16:04 문화 정보/음악 정보

헨델에 대한 평가



지금까지 보았다시피 헨델은 타고난 체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일평생 음악에 매진했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세 번이나 왕립음악아카데미를 창립했을 정도로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정치권과 연루된 협잡배들이나 당시에 잘 나가던 라이벌(니콜라 포르포라 등), 그리고 그를 시샘하던 사람들(보논치니가 대표적) 때문에 자신의 왕립음악아카데미가 온갖 역경과 수모를 당하며 자신이 파산지경에 여러번 이르면서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몸의 일부가 마비되면서도(1740년대 후반), 돌팔이 의사 때문에 실명을 당하면서도(1751) 결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업적은 차치하고 그 의지력과 굳은 음악적 신념만으로도 음악사에 남았을 수준이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답게 상당한 다혈질의 소유자였으며 급하고 과격한 성격때문에 자주 (주먹) 싸움을 벌였고 심지어 결투를 벌인 적도 있었다. 이 결투와 관련해서는 아래 마태존과 벌어진 이야기 참조. 이렇게 남에게 굽힐줄 모르는 강인한 성격 덕분에 그 풍파 많았던 런던의 음악계에서도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적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사실 그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고 말한 것은 좋게 표현한 것이고,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명예욕, 금전욕이 넘쳤던 사람이었다. 생전의 헨델은 명예욕과 돈욕심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전술했다시피 하노버에서 런던으로 야반도주 했다가 낭패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은 그의 출세욕과 물욕은 스스로를 자주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위기에 처할 때마다 훌륭한 음악성을 가진 작품으로 이를 극복했으니 후세의 클래식 팬들은 오히려 그의 속물근성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헨델은 작곡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했다. 헨델 시절만 해도 음악이 정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작곡가들은 모두 다작을 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헨델은 역대 1,2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작곡 속도를 자랑했다. 메시아도 고작 21일 만에 씌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연주되는 위대한 작품이 되었다. 이처럼 헨델은 음악을 거의 '찍어내는' 양산형 작곡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장르에 매우 수준 높은 명작품들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빠른 작곡 속도는 자신의 음악을 재탕 삼탕하거나 남의 음악을 도용해서 사용했던 습성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그의 여러 협주곡이나 소나타, 콘체르트 그로소(Concerto Grosso) 등의 작품을 들어보면 분명 다른 작품인데도 같은 작품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지 어리둥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그의 표절성향은 당대에도 악명이 높았는데, 사실 이는 당시 작곡가들 대부분에 해당되는 사항이므로(심지어 바흐도 작품 전체를 베끼는 등 상습적으로 표절을 일삼았다고 전해짐) 표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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